일식
일식 The Eclipse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알랭 들롱 - 피에로
모니카 비티 - 비토리아

 번역가인 비토리아는 건축가 애인 리카르도와 밤새 말씨름을 하고 그를 떠난다. 둘의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고 그들의 사랑은 식어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머니를 찾아 증권거래소에 찾아가지만 어머니는 주식으로 돈을 만질 생각에 미쳐있다. 거래소의 광기에 질려버린 비토리아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다음날 이탈리아의 증권거래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고 비토리아의 어머니도 큰 손해를 본다. 그녀는 어머니의 주식거래를 돕는 중개인 피에로를 만난다. 피에로의 회사는 잠시동안 문을 닫았다. 그와 그녀는 서로 사랑을 느끼고 며칠 간 황홀한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짧은 휴식이 끝나고 피에로와 비토리아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일상/비일상, 정지/움직임, 여자/남자 등 서로 대립하는 항들이 한데 겹쳐지는, 바로 일식과도 같은 순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 짧다.
 영화 초반 건축가 애인과 번역가인 비토리아는 밤새 말씨름을 하고 권태와 피로로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토리아의 시점에서 리카르도가 완전히 굳어있는, 마치 정물처럼 정지한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에 움직이는 것은 오직 선풍기 뿐이다. 이 선풍기의 움직임은 리카르도의 정지를 더욱 강조하는 것만 같다. 비토리아가 보기에는 리카르도는 굳어 움직이지 않는 정물이고, 그들간의 사랑도 이미 다 식어 화석화된 정물일 뿐이다. 더군다나 리카르도의 직업이 건축가라는 점도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는 영원한 정지의 상징이다.
 반면 피에로가 일하는 증권거래소는 끊임없이 변하는 숫자들의 세계다. 그녀는 피에로에게 "당신은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질 않는군요"라고 하는데, 그에게 정지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 손실을 의미한다. 증권거래소에서 누군가의 부고를 알리며 1분간 묵념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침묵하고 정지해 있을 때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천장에 달려 돌아가고 있는 환풍기다. 리카르도의 정지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1분이 지나자마자, 사람들은 다시 미친듯이 움직인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애도의 느낌이 없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전혀 중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오직 이익뿐이다. 그것을 대변하는 것은 비토리아의 어머니다. 그녀는 딸이 도움을 요청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사람들의 무리에 휩쓸려 가버린다. 비토리아는 피에로에게 허름한 농가에서 찍은 옛 가족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도시의 풍경은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넘어서서 미래적이다. 그녀가 걷는 집 근처 길과 공원의 풍경은 아름다우나 삭막하기 짝이 없다. 그 속에 인간은 아예 없거나 작은 점으로 존재한다. 아파트 친구 마르타는 케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거기서 보냈다. 마르타가 보여주고 들려준 아프리카의 삶에서 비토리아는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하다. 그녀는 흑인으로 분장하고 야만인의 관능적인 춤을 흉내내지만, 마르타는 검둥이짓은 그만두라고 화를 낸다. 그러나 비토리아는 야생의 순수한 에너지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그녀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한적한 공항의 주점 앞에는 젊은 흑인 남자 둘이 앉아 있다. 비토리아의 뒷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표정을 알 수 없지만 흑인 남자와 뭔가 눈짓이 오간다. 대립항, 백인/흑인. 유럽/아프리카. 문명/야생. 비행기를 타고 많은 거리를 날아갔지만 그 곳 역시 권태와 정지와 침묵으로 가득하다. 오직 들리는 것은 비행기의 프로펠러 소리. 역시 선풍기, 환풍기와 대구를 이룬다.
 피에로와 만나 길을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피에로가 말한다. "이 길을 건너면 당신에게 키스하겠다."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그녀가 눈 앞에서 본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두터운 나무였다. 선풍기, 환풍기, 프로펠러, 이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나무 아래 길가와 맞붙은 곳에는 물이 반쯤 차 있는 양동이가 있다. 그녀는 양동이 위에 떠다니는 나뭇조각을 자꾸만 손으로 건드려 움직이게 한다. 정지해 있는 순간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겁먹은 듯 키스를 거부한다. 혹은 피에로가 완전히 낯선 누군가로 보인다는 듯이. 나중에 그들이 풀밭에 누워 있다가 나누는 대화. 피에로가 그녀에게 "꼭 이 곳은 외국같이 느껴지는군.". 그러자 그녀가 피에로에게 말한다. "난 당신에게서 그렇게 느껴요."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두 사람이 피에로의 사무실에서 서로 장난치며 놀고 있는 순간이다. 바람이 불어들고, 부드러운 커튼에 몸을 감싸고, 창문을 사이에 두고 키스를 하며, 말 대신 야생의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위협하고 즐거운 흥분에 휩싸인다. 여기에는 말이 끼어들지 않는다. 말, 언어, 문명의 기호는 비토리아의 직업과도 연관이 있다. 그녀는 번역가이고, 스페인어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한다. 그녀의 일상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 대신 으르렁거림으로 교감이 이루어지는 이 순간은 명백하게 비일상적이다. 일탈의 순간. 그러나 일탈은 짧아서 아름답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휴식은 곧 끝나버리고 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피에로가 묻는다. 다시 만날 수 있냐고. 둘은 8시에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지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사무실을 나와 그녀가 맨 처음 본 것은 정지한 나무들이다. 바람이 멈춘 것이다. 피에로는 사무실로 돌아와 내려놓았던 수화기들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요란하게 전화들이 울린다. 두 사람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서의 시간 경과가 마지막 씬을 장식한다. 두 사람의 기억이 깃든 익숙한 공간들이 하나씩 보여진다. 정말 아무 변화도 없다. 사람들은 평소하고 똑같이 걸어다니고, 신문을 읽고, 버스에서 내린다. 점차 어둠이 온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비토리아가 나뭇조각을 빠뜨렸던 양동이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은 흘러서 보도를 적시고 하수구로 흘러들어간다. 
 영화는 마치 사진을 보듯 양식적인 구도들로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해내지만, 어쩐지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짙은 공허의 냄새는 무시할 수가 없다. 마지막 씬에서 보여주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뭔가 배경에 섞여들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며 불안해보인다. 그들은 그렇게 영원히 어리둥절한 채로 길과 길을 해매고 다닐 것만 같다. 건축물들, 도시의 전경은 인간을 압도한 채로 스펙터클을 내뿜는다. 화면을 꽉 채운 건물들. 유난히 프레임 한쪽 모퉁이에 인물을 배치한 샷이 많은 것도 그런 의도에서일까. 그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발전도상에서 이탈한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지 모른다. 비토리아의 물음, "그럼 이들이 잃은 돈은 누가 가져가는 거죠?", 피에로의 대답, "아무도.". 주가가 오르고 내리고 건물이 올라가는 이 근대사회에서 인간은 완전히 소외되어있다. 그들이 약속 장소로 정한 양동이가 있는 모퉁이에는 짓다만 건물이 위치해있다. 공사는 멈춘 듯 보인다. 공사가 멈춘 순간, 그 지점에 이 두 사람이 있다. 
 수직의 이미지들. 주가의 오르내림은 Up, Down으로 표현되고, 리카르도의 집 바로 앞에는 수직으로 뻗어 마치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버섯 모양의 건축물이 보인다. 비토리아가 걷는 길가에 줄줄이 세워진 가로등들. 물에 빠진 자동차를 낚아올리는 크레인. 마르타의 도망친 개를 찾기 위해 나갔을 때 그녀가 보게 되는 것은 하늘을 향해 뻗은 국기대들과 온 몸을 곧게 뻗은채 남성적인 매력을 강조한 조각상이다. 
 
by 무법자 | 2009/05/16 20:48 | 반성의시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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